로마이야기Rom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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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

일상

로마의 하루는 천 년 동안 한결같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주로 공화정 말과 제정 초, 도시 로마와 폼페이에서 보이는 모습입니다. 제국 사람 대부분은 농촌에 살았습니다.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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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대부분 사람의 밥은 빵과 죽, 올리브, 치즈, 채소, 그리고 생선으로 만든 짠 소스였습니다. 영화의 밤새 연회는 부자의 특별한 자리입니다.

  1. 이른 주식은 곡물 죽(풀스)이었고, 나중에는 빵이 더 중요해집니다.
  2. 포도주는 물과 섞어 마시는 일이 많았습니다. 올리브유는 요리와 조명, 몸에 바르는 데까지 쓰였습니다.
  3. 가룸이라는 발효 생선 소스는 등급만 다를 뿐 여러 계층의 음식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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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집의 저녁(케나)은 기대어 앉는 식탁(트리클리니움)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앉아 먹는 집이 더 많았습니다.

페트로니우스의 소설 『사티리콘』에 나오는 과도한 잔치는 풍자입니다. 요리책으로 전하는 『아피키우스』도 일상 식단표가 아니라 후대에 모은 조리 모음입니다.

폼페이에는 뜨거운 음식을 팔던 가게 흔적(테르모폴리움)이 있습니다. 좁은 집에 부엌이 없는 사람은 밖에서 사 먹었습니다.

HOU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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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부자는 안마당이 있는 저택(도무스)에 살았고, 도시 빈민의 상당수는 상점 위 다층 임대 건물(인술라)에 살았습니다.

  1. 도무스의 입구 쪽 마당(아트리움)과 빗물을 받는 수반, 안쪽 정원이 교과서에 나오는 구조입니다. 폼페이 집이 모델입니다.
  2. 인술라는 1층에 가게가 있고 위로 갈수록 좁고 위험했습니다. 화재와 붕괴가 두려웠습니다.
  3. 길거리로 창을 적게 내고, 집 안 마당으로 빛과 공기를 받는 집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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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와 네로 시대에는 건물 높이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64년 대화재 뒤 로마는 길을 넓히고 기둥 회랑을 두라는 재건 이야기를 타키투스가 전합니다.

수도에는 물이 수도교로 들어왔지만, 위층 세입자에게 개인 수돗물이 늘 있던 것은 아닙니다. 공중 분수와 공중 변소를 썼습니다.

교외의 빌라는 부자의 농장 겸 별장입니다. 노예 노동이 큰 농장(라티푼디움)은 이탈리아 일부에서 중요했지만, 제국 전체의 비율을 하나의 숫자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BA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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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공공 목욕탕은 몸을 씻는 곳이면서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입장료는 대체로 쌌습니다.

  1. 바닥 아래 뜨거운 공기(히포카우스트)로 방을 데웠습니다.
  2. 기름을 바르고 굽은 주걱(스트리길)으로 때를 밀어 내는 방식이 흔했습니다. 오늘날의 비누가 중심은 아니었습니다.
  3. 탈의실, 미지근한 방, 뜨거운 방, 찬 방이 이어졌지만 순서를 모두가 똑같이 지킨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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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함께 들어갔는지는 시대와 도시마다 달랐습니다. 한 가지 규칙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아그리파가 지은 목욕탕처럼 정치가가 인기를 위해 짓기도 했고, 카라칼라 욕장이나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 같은 거대한 시설은 제정 후기의 국가 건축입니다. 공화정 사람이 그 욕장을 쓴 것은 아닙니다.

수도교를 관리한 프론티누스의 글은 물이 어떻게 도시로 들어왔는지 보여 줍니다. 목욕탕은 그 물의 큰 고객이었습니다.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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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룸

포룸 로마눔은 정치 연설, 재판, 신전, 장사가 겹치던 도심의 골짜기입니다. 교회의 광장이 아니라 공화정의 거실에 가깝습니다.

  1. 연단(로스트라)에서 연설하고, 바실리카라는 큰 홀에서 재판과 사업을 봤습니다. 바실리카는 원래 교회 건축이 아닙니다.
  2. 사투르누스 신전은 국고와 연결됐고, 베스타 신전에는 도시의 꺼지지 않는 불이 있었다고 합니다.
  3.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트라야누스가 옆에 새 포룸을 더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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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이는 원로원 회의장(쿠리아)은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에 다시 지은 건물에 가깝습니다. 공화정 당시의 벽돌이 그대로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사만 하던 공간은 점점 다른 시장으로 옮겨 가기도 했습니다. 포룸은 ‘시장’과 ‘정치의 무대’ 사이를 오갔습니다.

신들의 이름은 신과 전설에서 그리스 신과 짝지어 두었습니다. 포룸의 의례는 이야기보다 정확한 절차가 중요했습니다.

SOCIAL RO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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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자리

로마 사회는 시민이냐 아니냐, 자유인이냐 노예냐, 가문이 얼마나 오래됐느냐로 자리가 달랐습니다. 가난한 시민과 부유한 비시민이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1. 남성 시민은 투표와 군역의 의무와 권리를 가졌습니다. 여성 시민은 투표하지 않았지만 재산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2. 파트리키(오래된 귀족 가문)와 플레브스(평민)의 구별은 혈통입니다. 평민이 곧 빈민은 아닙니다.
  3. 노예는 법적으로 재산이었지만 해방되면 제한된 시민이 될 수 있었고, 그 자녀는 자유 출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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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파테르파밀리아스)은 법전상 자녀에 대한 강한 권한을 가졌습니다. 실제 어른 아들이 아무 일도 못 했던 것은 아닙니다. 법과 일상을 구분해야 합니다.

기사 계급(에퀴테스)은 원래 기병에서 나온 말로, 나중에는 재산이 있는 두 번째 계층을 뜻했습니다. 원로원 의원은 그 위의 좁은 집단입니다. 아우구스투스 때 원로원은 대략 600명 규모로 다시 줄었습니다.

212년 카라칼라 황제는 제국 안의 자유민 거의 모두에게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카시우스 디오는 세금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전까지 속주 사람 대다수는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아래 작품은 로마를 무대로 한 극이며, 그리는 시대 순으로 놓았습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 서기 26–33년 무렵 · 티베리우스 시대

    「벤허」Ben-Hur · 1959 · 영화

    전차 경기, 갤리선, 로마가 속주를 대하는 태도를 크게 상상하게 해 줍니다. 루 월리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합니다.

    유다 벤허는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바다 전투와 전차 경주는 극의 장치입니다. 티베리우스 시대 유대 지역과 로마 권력의 분위기를 보되, 사건 자체는 역사로 외우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2016년 리메이크보다 1959년 작품이 널리 알려진 제목입니다.

    일상티베리우스더 초즌에서 빌라도 보기

  • 서기 64년 · 네로 시대

    「쿼 바디스」Quo Vadis · 1951 · 영화

    네로 시대의 대화재와 그리스도교 박해 이야기를 영화로 만날 때 자주 거론되는 작품입니다. 시엔키에비치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타키투스는 64년 대화재와, 네로가 그리스도교인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영화의 연애와 음모는 소설의 창작입니다. 네로가 바이올린을 켰다는 이미지는 맞지 않습니다. 당시 그 악기는 없었고, 고대 소문은 리라(작은 현악기) 쪽입니다. 베드로가 로마로 돌아섰다는 ‘쿼 바디스’ 일화는 타키투스의 역사가 아니라 후대 그리스도교 전승입니다.

    네로일상

  • 서기 79년 · 베수비오 분화

    「폼페이: 최후의 날」Pompeii · 2014 · 영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폼페이를 덮은 사건 자체를 떠올리게 합니다. 도시 생활의 배경을 크게 보고 싶을 때 거론됩니다.

    화산 폭발은 사실입니다. 소 플리니우스가 목격담을 편지에 남겼습니다. 폭발이 8월인지 가을인지는 최근 연구가 다시 따집니다. 검투사와 영주의 딸이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는 창작이고, 폼페이는 수도 로마가 아니라 캄파니아의 도시입니다.

    폼페이와 캄파니아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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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로 삼은 기록

  • 카토 『농업론』 · 이탈리아 농가의 음식과 노동
  • 프론티누스 『수도교에 관하여』 · 도시로 들어오는 물
  • 타키투스 『연대기』 15권 · 64년 대화재와 재건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건물 규제, 황제들의 건축
  • 소 플리니우스 『편지』 6권 16·20 · 79년 베수비오 폭발 목격담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212년 시민권 확대에 대한 설명
  • 폼페이·오스티아 유적 · 집, 가게, 목욕, 낙서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