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이야기Rom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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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지역

로마는 수도의 이름이면서 나라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래 카드는 서쪽 바다에서 동쪽 왕국, 그리고 강가의 변경으로 나가는 순서입니다. 정확한 경계선은 세기마다 움직였습니다.

지역 탐험 지도 Region explorer

핀을 누르면 그곳의 사건·인물·영화가 열립니다. 아래에서 시대를 고르고, 원정 경로를 한 걸음씩 따라가 보세요.

Tap a pin for events, people and films; filter by era; step through campaig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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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경위도 꼭짓점으로 직접 그린 단순화 윤곽(실제 해안선·고대 국경 아님). 위치는 대략입니다. Simplified outline drawn in code; positions approxi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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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로마

티베르강가의 도시국가에서 제국의 수도가 된 곳입니다.

From a Tiber town to the capital of an empire.

주요 사건 Key events

  1. 전 509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를 쫓아내고 공화정이 시작됐다고 전합니다.

    Traditional start of the Republic.

  2. 전 390(또는 387)알리아 강에서 진 뒤 갈리아인에게 도시를 약탈당합니다.

    Sack of Rome by the Gauls.

  3. 전 443월 15일 카이사르가 원로원 회의 중 암살됩니다.

    Caesar assassinated on the Ides of March.

  4. 서기 64네로 때 대화재가 도시를 휩씁니다.

    The Great Fire under Nero.

  5. 서기 80티투스가 콜로세움(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을 봉헌합니다.

    Titus inaugurates the Colosseum.

  6. 410알라리크의 서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합니다(8월 24일).

    Alaric's Visigoths sack Rome.

  7. 455반달족이 다시 로마를 약탈합니다.

    The Vandals sack Rome.

  8. 536–538벨리사리우스가 로마에 들어가고, 고트 왕 비티게스의 포위를 1년 넘게 버팁니다.

    Belisarius holds Rome against the Gothic siege.

전해지는 이야기 Unverified tales

  • 기원전 753년 4월 21일 로물루스가 도시를 세웠다는 날짜는 후대의 계산입니다.

    The 753 BC founding date is a later reckoning.

  • 갈리아인이 밤에 카피톨리움을 오를 때 유노 신전의 거위가 울어 막았다는 이야기(리비우스).

    Juno's sacred geese saved the Capitol (Livy).

  • 네로가 불타는 로마를 보며 노래했다는 이야기는 수에토니우스·디오의 소문이고, 타키투스는 소문이라고 적습니다.

    Nero 'fiddling' is a rumour even in the sources.

‘전해지는 이야기’는 고대 작가가 전하지만 확인되지 않거나, 학자 사이에 논란이 있는 내용입니다.

원정 경로 Campaign ro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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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지역 카드 Beyond Italy

ITALY

이탈리아에서 시작

로마는 처음부터 반도 전체를 가진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라티움의 도시에서 이웃을 흡수하며 커졌습니다.

ROME

로마

티베르강 근처, 일곱 언덕으로 불리는 자리에 생긴 도시국가입니다. 나중에도 제국의 마음이었지만, 황제가 늘 여기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1. 팔라티누스 언덕에서는 기원전 8세기 무렵의 움집 흔적이 나옵니다.
  2. 포룸은 공동묘지로 쓰이다가, 기원전 7–6세기 무렵 도시의 광장이 됩니다.
  3. 제정 후기에는 밀라노, 라벤나, 콘스탄티노플처럼 다른 도시가 실제 통치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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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언덕’은 후대의 깔끔한 목록입니다. 마을은 언덕과 강변 습지를 조금씩 메우며 자랐습니다.

수도라고 해서 제국 인구의 대부분이 여기 산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사람은 작은 농촌에 살았습니다. 도시의 집과 목욕은 일상에 적었습니다.

LATIUM

라티움과 알바 롱가

로마 남동쪽의 라틴어를 쓰던 이웃 도시들입니다. 알바 롱가는 로물루스의 조상 도시로 전설에 나오지만, 왕들의 연대기는 후대 정리입니다.

  1. 로마 전승은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이 알바 롱가를 세웠다고 합니다. 트로이 전쟁과 기원전 753년 사이를 메우는 족보입니다.
  2. 라틴 도시들은 동맹이었다가 로마에 흡수됩니다.
  3. 기원전 4–3세기 이탈리아 전쟁 끝에 로마 시민권과 동맹의 그물이 반도에 깔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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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족보 이야기는 역사 기록이 아니라 로마가 자기 기원을 설명한 방식입니다. 신화 쪽 줄기는 나두신화의 아이네이스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기원전 90년 무렵 이탈리아 동맹시들이 시민권을 요구하며 싸운 전쟁(동맹시 전쟁)이 끝난 뒤, 이탈리아 자유민의 상당수가 로마 시민이 됩니다.

ETRURIA

에트루리아

로마 북쪽, 지금 토스카나 일대의 도시 문화입니다. 왕정 후기 로마의 건축·의례·권력 표시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 전승 속 왕 타르퀴니우스 가문은 에트루리아 도시 타르퀴니에서 왔다고 합니다.
  2. 개선식의 자주색 옷과 상아 의자 같은 권력의 표시를 로마는 에트루리아 쪽에서 배웠다고 고대 작가들이 적습니다.
  3. 베이이 같은 도시는 로마와 오래 싸우다 기원전 4세기 초 로마에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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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루리아어는 인도유럽어족이 아니라서 아직 완전히 읽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트루리아인이 로마를 통치했다’는 문장을 너무 단정하면 위험합니다. 영향은 분명하고, 왕들의 전기는 흐립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에트루리아 인물 마스타르나와 세르비우스 툴리우스가 같은 사람일 수 있다고 연설에서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단서이지, 확정된 동일시는 아닙니다.

CAMPANIA

캄파니아

나폴리만 주변의 기름진 땅입니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이 79년 화산재 아래 남아, 도시 생활의 스냅샷이 되었습니다.

  1. 그리스 식민도시 네아폴리스(나폴리)와 이탈리아 도시, 로마 식민이 섞여 있었습니다.
  2. 카푸아는 검투사 훈련소로 유명하고, 스파르타쿠스 반란이 여기서 시작됐다고 전합니다.
  3. 폼페이는 수도가 아닙니다. 그래도 집, 식당, 낙서, 빵집이 남아 일상을 상상하는 데 가장 좋은 유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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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수비오 폭발의 전통 날짜는 79년 8월 24일입니다. 발굴된 글과 계절의 흔적을 보고 10월이었을 가능성을 말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해가 79년이라는 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은 이 재난을 쓰되 사랑 이야기는 창작입니다.

WEST

서쪽 지중해

기원전 3–2세기의 큰 전쟁은 서쪽 바다, 특히 카르타고와의 싸움이었습니다.

SICILY

시칠리아와 남이탈리아

그리스 도시가 많았던 바다입니다. 로마가 처음으로 ‘속주’(본국 밖에서 다스리는 지역)를 만든 곳이 시칠리아입니다.

  1. 타란토 같은 그리스 도시가 피로스를 불러 로마와 싸웠습니다.
  2. 제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241)의 주 전장이 시칠리아입니다.
  3. 시라쿠사는 그리스 문화의 큰 도시였고,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에 함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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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탈리아를 옛 말로 마그나 그라키아(대그리스)라고 부릅니다. 로마는 그리스 신화와 극장을 멀리 그리스 본토에서만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이웃 도시에서도 만났습니다.

CARTHAGE

카르타고와 아프리카

오늘 튀니지 근처의 해양 도시입니다. 페니키아 사람이 세웠고, 로마와 세 차례 큰 전쟁 끝에 기원전 146년 파괴됩니다.

  1. 무역과 해군이 강했습니다. 로마는 이 전쟁에서 배 만드는 법을 급히 배웠습니다.
  2. 한니발은 카르타고 쪽 장군이지, 로마의 적이 된 그리스 왕이 아닙니다.
  3. 파괴된 뒤 같은 지역은 로마 속주 아프리카가 되고, 곡창이 됩니다. 나중에 도시도 다시 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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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땅에 소금을 뿌려 아무것도 못 자라게 했다는 말은 고대 기록에 없습니다. 후대에 생긴 이야기입니다.

전쟁 세 번의 차이는 포에니 전쟁 글에 나눠 두었습니다.

HISPANIA

히스파니아

이베리아 반도,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일대입니다. 카르타고와 로마가 여기서 먼저 부딪쳤고, 나중에 트라야누스 같은 황제 가문이 나옵니다.

  1. 한니발은 여기서 군사를 모아 알프스로 향했습니다.
  2. 로마의 지배는 전쟁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원주민 저항이 오래 이어졌습니다.
  3. 히스파니아 출신이라는 말은 곧 ‘로마인이 아니다’가 아닙니다. 식민 도시의 로마 시민 가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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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만티아(기원전 133년 무렵 함락)처럼 오래 버틴 도시가 있습니다. 반도 전체가 조용한 속주가 된 것은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가깝습니다.

GAUL

갈리아

대체로 오늘날 프랑스와 벨기에, 라인강 서쪽입니다. 기원전 390년 무렵에는 갈리아인이 로마를 쳤고, 기원전 58–50년에는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쳤습니다.

  1. 갈리아는 하나의 왕국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부족의 모임이었습니다.
  2. 카이사르의 전쟁기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사망자 숫자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3. 정복 뒤에도 로마식 도시와 갈리아 말이 함께 남았습니다. 프랑스어의 뿌리는 이 라틴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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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87년 무렵(로마식 계산은 390년) 갈리아인의 로마 약탈은 공화정이 성벽을 다시 쌓고 군사에 집착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카이사르의 전쟁은 그로부터 300년 뒤입니다.

EAST

동쪽 지중해

카르타고를 꺾은 뒤 로마는 그리스와 헬레니즘 왕국들의 분쟁에 끼어듭니다. 문화는 그리스 쪽이, 정치는 로마 쪽이 이깁니다.

GREECE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의 왕국들이 아직 있던 세계입니다. 로마는 기원전 2세기에 마케도니아를 없애고 그리스 도시의 중재자가 됩니다.

  1. 기원전 197년 키노스케팔라이, 168년 피드나에서 로마 군단이 밀집 창병 진(팔랑크스)을 이깁니다.
  2. 기원전 146년 코린토스가 파괴됩니다. 카르타고가 무너진 해와 같습니다.
  3. 인질과 학자, 조각이 로마로 들어가며 로마 엘리트가 그리스 문화를 크게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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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그리스의 자유’를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주둔군이 빠진 것은 맞지만, 분쟁이 생기면 로마가 판결하는 자유였습니다.

EGYPT

이집트

알렉산드로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다스리던 부유한 나라입니다. 곡물이 많았고, 기원전 30년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뒤 로마 황제의 직할 지역이 됩니다.

  1. 수도는 알렉산드리아입니다. 그리스어를 쓰는 궁정과 이집트 전통이 함께 있었습니다.
  2. 로마 정치가에게 이집트는 동맹인 동시에 위험한 돈줄이었습니다.
  3. 속주가 된 뒤 원로원 의원은 허가 없이 들어가기 어려웠습니다. 황제가 곡물을 직접 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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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를 단순히 ‘이집트 사람 연인’으로 보면 정치가 빠집니다. 왕조는 그리스·마케도니아계였고, 그녀는 파라오를 겸했습니다. 자세한 글은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입니다.

ASIA AND SYRIA

아시아와 시리아

오늘날 튀르키예 서부와 시리아 일대입니다. 페르가몬 왕의 유언으로 로마가 땅을 받은 일이 유명하고, 시리아는 동방 전선의 기지였습니다.

  1. 기원전 133년 페르가몬의 아탈로스 3세가 나라를 로마에 남겼다고 전합니다. 아시아 속주의 시작입니다.
  2. 시리아는 기원전 64–63년 폼페이우스가 정리한 뒤 중요한 군사 속주가 됩니다.
  3. 파르티아, 나중에는 사산조 페르시아와 국경이 맞닿아 전쟁이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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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지역은 이 동방 세계의 일부로 로마 지배 아래 들어갑니다. 서기 70년 예루살렘 함락은 티투스가 지휘했습니다. 132–136년 바르 코크바 반란은 하드리아누스 시대의 일입니다.

FRONTIERS

변경

제국의 끝은 선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강, 성벽, 길, 동맹 부족이 겹친 지대였습니다.

BRITANNIA

브리타니아

카이사르가 기원전 55–54년에 잠시 상륙했지만, 정복은 아닙니다. 속주가 된 것은 서기 43년 클라우디우스 때의 원정입니다.

  1. 하드리아누스 성벽은 122년 무렵 브리튼 섬 북쪽 경계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제국 전체의 국경은 아닙니다.
  2. 그 북쪽의 안토니누스 성벽은 더 나중에, 더 짧게 유지됐습니다.
  3. 군단 병사는 이탈리아 사람만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속주 출신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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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섬 전체를 끝까지 다스린 것은 아닙니다. 스코틀랜드 고지와 아일랜드는 속주 밖에 남았습니다.

RHINE AND DANUBE

라인강과 도나우강

게르마니아를 통째로 정복하지 못한 로마가 강가에 군단을 둔 경계입니다. 아우구스투스의 게르마니아 원정은 9년 토이토부르크 숲의 패배로 크게 후퇴합니다.

  1. 라인 동쪽 깊은 지역은 속주가 되지 못했습니다.
  2. 도나우 쪽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오래 전쟁을 치렀습니다.
  3. 변경의 부족은 적만은 아니었습니다. 동맹, 무역, 용병이 함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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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족이 밀고 들어와 하루아침에 로마가 무너졌다’는 그림은 너무 단순합니다. 4–5세기 서쪽에서는 로마 장군, 황제, 고트족 같은 집단이 같은 정치판 안에서 싸웁니다.

DACIA

다키아

대체로 오늘날 루마니아 일대입니다. 트라야누스가 101–106년 두 차례 전쟁으로 속주로 만들었고, 3세기 후반에는 유지하기 어려워 포기합니다.

  1. 수도 사르미제게투사의 왕 데케발루스가 상대였습니다.
  2. 로마에 있는 트라야누스 원기둥은 이 전쟁을 나선형 그림으로 새겼습니다.
  3. 금광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로마의 모든 건축을 이 금으로 지었다는 식의 설명은 단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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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키아를 버린 뒤에도 도나우 남쪽의 방어는 이어집니다. 정복과 포기가 모두 제국의 일상적인 선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