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S
전쟁
로마의 영토는 연설보다 전쟁에서 늘었습니다. 각 카드는 왜 싸웠는지, 누구와 싸웠는지, 끝나서 무엇이 바뀌었는지만 먼저 보여 줍니다.
WAR WITH THE AEQUI
아이퀴족과의 전쟁
전통 연대 기원전 458년
산악 부족 아이퀴족이 로마 군대를 골짜기에 가두자, 원로원이 밭을 갈던 킨키나투스를 독재관으로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초기 공화정의 기록은 전설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 왜
- 라티움 동쪽 산지의 아이퀴족이 로마와 동맹 도시의 땅을 자주 약탈했습니다.
- 누구
- 로마와 라틴 동맹 대 아이퀴족. 알기두스 산 부근이 무대로 전합니다.
- 결과
- 리비우스는 킨키나투스가 적을 항복시키고 16일 만에 독재관 자리를 내놓았다고 적습니다.
VEII AND THE GALLIC SACK
베이이 전쟁과 갈리아인의 로마 약탈
기원전 396년 · 390년 무렵
로마가 이웃 에트루리아 도시 베이이를 오랜 포위 끝에 차지하고, 몇 년 뒤 북쪽에서 내려온 갈리아인에게 로마가 약탈당한 사건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카밀루스라는 이름에 묶여 전합니다.
- 왜
- 베이이는 티베르강 건너편의 경쟁 도시였습니다. 갈리아인은 알프스 남쪽으로 이주해 이탈리아 중부까지 내려왔습니다.
- 누구
- 로마 대 베이이, 그리고 로마 대 브렌누스가 이끈 갈리아인.
- 결과
- 로마는 베이이 땅을 얻어 크게 넓어집니다. 갈리아 약탈 뒤 로마는 성벽(세르비우스 성벽)을 돌로 다시 쌓습니다.
PYRRHIC WAR
피로스 전쟁
기원전 280–275년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도시 타란토가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를 불러 로마와 싸운 전쟁입니다. 로마는 졌다가도 다시 군대를 채워 결국 남부를 지킵니다.
- 왜
- 로마가 남이탈리아로 영향력을 넓히자, 타란토가 헬레니즘 세계의 용병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 누구
- 피로스(전쟁 코끼리와 밀집 창병) 대 로마 군단. 피로스는 시칠리아에서 카르타고와도 싸웁니다.
- 결과
- 피로스는 이탈리아를 떠납니다. 로마는 전문 왕국 군대와 싸워 살아남았다는 평판을 얻습니다.
FIRST PUNIC WAR
제1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64–241년
로마가 처음으로 바다 건너 시칠리아에서 벌인 큰 전쟁입니다. 육군 국가였던 로마가 함대를 만들어 카르타고와 23년을 싸웁니다.
- 왜
- 시칠리아의 메시나에 있던 용병단이 로마와 카르타고 양쪽에 도움을 요청했고, 로마가 개입하면서 전쟁이 커졌습니다.
- 누구
- 로마의 신생 해군과 육군 대 카르타고. 주 전장은 시칠리아와 그 주변 바다입니다.
- 결과
- 카르타고가 시칠리아를 넘기고 배상금을 냅니다. 로마의 첫 속주가 생깁니다.
SECOND PUNIC WAR
제2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18–201년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쳐들어옵니다. 로마는 칸나이에서 최악의 패배를 당하고도 항복하지 않았고, 결국 아프리카에서 전쟁을 끝냅니다.
- 왜
- 한니발의 스페인 확장, 사군툼 공격, 그리고 에브로강 조약의 해석 차이가 겹쳤습니다. 폴리비오스는 바르카 가문의 분노와 로마의 사르데냐 탈취도 원인으로 꼽습니다.
- 누구
- 한니발의 카르타고·스페인·갈리아 혼성군 대 로마. 로마 쪽 이름으로는 파비우스 막시무스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중요합니다.
- 결과
- 기원전 202년 자마에서 한니발이 집니다. 카르타고는 해외 영토와 해군, 독자적인 외교를 잃습니다.
MACEDONIAN WARS
마케도니아·그리스 전쟁
주로 기원전 214–168년
로마가 카르타고와 싸우는 동안, 그리고 그 직후, 그리스 세계의 왕들과 부딪힌 전쟁들입니다. 밀집 창병 진이 군단에게 지고 마케도니아 왕국이 사라집니다.
- 왜
- 필리포스 5세가 한니발과 손을 잡았고, 포에니 전쟁이 끝나자 로마는 동쪽이 다시 강해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리스 도시들의 요청도 구실이 되었습니다.
- 누구
- 로마 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 그 아들 페르세우스.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코스 3세와의 전쟁도 같은 세대에 겹칩니다.
- 결과
- 기원전 168년 왕국이 해체되고, 148년 무렵 마케도니아는 속주가 됩니다. 146년 코린토스가 파괴됩니다.
THIRD PUNIC WAR
제3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149–146년
이미 약해진 카르타고를 로마가 포위해 도시를 없앤 전쟁입니다. 같은 해 그리스의 코린토스도 파괴됩니다.
- 왜
- 누미디아의 마시니사가 카르타고 영토를 계속 잠식했고, 카르타고가 조약에 묶인 채 반격하자 로마는 이를 구실로 삼았습니다. 도시를 아예 없애자는 여론이 로마에 있었습니다.
- 누구
- 로마군, 막판 지휘는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상대는 성벽에 갇힌 카르타고 시민과 용병입니다.
- 결과
- 기원전 146년 도시가 함락·파괴되고 생존자 상당수가 노예가 됩니다. 땅은 아프리카 속주가 됩니다.
CIMBRIAN WAR
킴브리·테우토니 전쟁
기원전 113–101년
북쪽에서 내려온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이 로마 군대를 여러 번 깨뜨리자, 로마가 마리우스를 연달아 집정관으로 뽑아 막아 낸 전쟁입니다.
- 왜
-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이 살 땅을 찾아 이동하며 갈리아 남부와 알프스 근처의 로마 영역에 닿았습니다.
- 누구
- 마리우스와 카툴루스, 술라 대 킴브리족·테우토니족.
- 결과
- 기원전 102년 아콰이 섹스티아이, 101년 베르켈라이에서 로마가 이깁니다. 마리우스는 일곱 번 집정관을 지낸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SOCIAL WAR AND SULLA'S CIVIL WAR
동맹시 전쟁과 술라의 내전
기원전 91–81년
이탈리아의 동맹 도시들이 로마 시민권을 요구하며 일어난 전쟁과, 곧이어 마리우스파와 술라파가 로마를 두고 싸운 첫 큰 내전입니다.
- 왜
- 로마의 전쟁에 군인을 대던 이탈리아 동맹들이 시민권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어 동방 전쟁의 지휘권을 두고 마리우스와 술라가 부딪힙니다.
- 누구
- 로마 대 이탈리아 동맹들, 그 뒤 술라 대 마리우스와 킨나의 세력.
- 결과
- 이탈리아 사람 대부분이 시민권을 얻습니다. 술라는 로마로 진군해 독재관이 되고, 정적 명단(프로스크립티오)을 내걸어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MITHRIDATIC WARS
미트리다테스 전쟁
기원전 89–63년
흑해 남쪽 폰토스의 왕 미트리다테스 6세가 로마의 동방 속주를 뒤흔들고, 술라·루쿨루스·폼페이우스가 차례로 맞선 세 차례의 전쟁입니다.
- 왜
- 미트리다테스가 소아시아로 세력을 넓히며 로마의 아시아 속주와 부딪혔습니다.
- 누구
- 로마 장군들 대 폰토스 왕 미트리다테스 6세와 그의 동맹 아르메니아.
- 결과
- 폼페이우스가 동방을 다시 짜고 시리아를 속주로 만듭니다. 기원전 63년에는 예루살렘에도 들어갑니다.
GALLIC WAR
갈리아 전쟁
기원전 58–50년
카이사르가 갈리아의 여러 부족을 잇달아 무찌르고, 기원전 52년 알레시아에서 베르킨게토릭스의 연합을 항복시킨 전쟁입니다. 가장 자세한 기록은 승자인 카이사르 자신의 글입니다.
- 왜
- 카이사르는 알프스 남쪽 갈리아(북이탈리아), 알프스 북쪽 갈리아(남프랑스 쪽), 일리리쿰(아드리아해 동쪽)의 지휘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헬베티족의 이동을 첫 구실로 삼았고, 빚과 명예, 군단을 손에 넣으려는 계산도 있었습니다.
- 누구
- 카이사르의 군단 대 갈리아의 여러 부족. 갈리아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52년에는 아르베르니족의 베르킨게토릭스가 많은 부족을 묶습니다.
- 결과
- 갈리아가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카이사르는 노련한 군대와 막대한 재물을 얻어 내전의 주인공이 됩니다.
BATTLE OF CARRHAE
카레 전투
기원전 53년
크라수스가 파르티아를 치러 갔다가 지금의 튀르키예 남동부 카레 근처에서 크게 지고 목숨을 잃은 전투입니다.
- 왜
-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에 견줄 군사적 명성을 원한 크라수스가 시리아 총독으로서 파르티아 원정을 벌였습니다.
- 누구
- 크라수스의 로마 군단 대 수레나스가 이끈 파르티아의 기마 궁수와 중기병.
- 결과
- 로마군 대부분이 죽거나 포로가 되고 군기(독수리 깃발)를 빼앗깁니다. 삼두정치의 균형도 무너집니다.
CAESAR'S CIVIL WAR
카이사르의 내전
기원전 49–45년
갈리아의 군단을 해산하라는 원로원의 요구를 카이사르가 거절하고,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들어온 전쟁입니다. 공화정의 옛 규칙은 이 전쟁으로 사실상 무너집니다.
- 왜
- 카이사르의 지휘권과 재판 면제를 둘러싼 협상이 결렬됩니다. 기원전 49년 1월 그는 루비콘강을 건너 이탈리아에 군대를 들입니다. 당시 법으로는 불법이었습니다.
- 누구
- 카이사르 대 폼페이우스와 원로원 다수파. 폼페이우스가 죽은 뒤에도 아프리카와 스페인의 폼페이우스파와 전쟁이 이어집니다.
- 결과
-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가 기원전 44년 3월 15일 암살됩니다. 평화는 오지 않고 다음 내전으로 넘어갑니다.
BATTLE OF PHILIPPI
필리피 전투
기원전 42년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그리스 북부 필리피에서 무너뜨린 두 차례의 싸움입니다.
- 왜
- 카이사르 암살 뒤 2차 삼두(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레피두스)가 복수와 권력을 함께 내세웠습니다.
- 누구
-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대 브루투스·카시우스.
- 결과
- 카시우스와 브루투스가 차례로 목숨을 끊습니다. 승리의 공은 주로 안토니우스에게 돌아갑니다.
ACTIUM
악티움 해전
기원전 31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가 그리스 서해안에서 맞붙은 해전입니다. 공화정 마지막 내전의 결판으로 자주 기억됩니다.
- 왜
- 삼두정치(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무너집니다. 안토니우스가 동방의 땅을 클레오파트라의 자녀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소식이 로마에서 공격당하고, 전쟁은 형식상 클레오파트라에게 선포됩니다.
- 누구
- 옥타비아누스 쪽 함대 지휘는 아그리파. 상대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배입니다. 장소는 그리스 서부 악티움, 암브라키아만 입구입니다.
- 결과
-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로 물러나고, 기원전 30년 둘 다 죽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혼자 남고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됩니다.
TEUTOBURG FOREST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9년 (게르마니쿠스의 반격 14–16년)
로마 총독 바루스의 세 군단이 게르마니아의 숲길에서 아르미니우스에게 매복당해 전멸한 싸움입니다. 로마의 엘베강 국경 계획은 여기서 멈춥니다.
- 왜
- 바루스가 게르마니아를 속주처럼 다스리며 세금과 재판을 밀어붙였고, 로마군에서 복무한 케루스키족 아르미니우스가 반란을 몰래 준비했습니다.
- 누구
- 바루스의 제17·18·19군단 대 아르미니우스가 모은 게르만 부족 연합.
- 결과
- 세 군단이 사라지고, 그 번호는 다시 쓰이지 않았습니다. 로마는 라인강을 국경으로 굳힙니다.
FIRST JEWISH–ROMAN WAR
유대 전쟁
66–73년
유대 지방이 로마에 맞서 일어나자 베스파시아누스와 아들 티투스가 진압한 전쟁입니다. 70년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집니다.
- 왜
- 총독들의 수탈과 종교 갈등이 쌓여 66년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터졌습니다.
- 누구
- 베스파시아누스·티투스의 로마군 대 유대 반란 세력.
- 결과
-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73년(또는 74년) 마사다 요새가 함락됩니다. 플라비우스 왕조의 출발점이 됩니다.
DACIAN WARS
다키아 전쟁
101–106년
트라야누스가 도나우강 북쪽의 다키아 왕국(지금의 루마니아 일대)을 두 번 쳐서 속주로 만든 전쟁입니다.
- 왜
- 다키아 왕 데케발루스가 도미티아누스 때부터 로마와 겨루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 누구
- 트라야누스의 로마군 대 데케발루스의 다키아.
- 결과
- 다키아가 속주가 되고 금광의 부가 로마로 들어옵니다. 로마는 이 무렵 가장 넓은 땅을 갖습니다.
STILICHO AND THE GOTHS
스틸리코와 고트족 전쟁
395–408년
서로마의 실권자 스틸리코가 알라리크의 서고트족, 라다가이수스의 침입을 막아 낸 싸움들입니다. 스틸리코가 처형된 뒤 410년 로마가 약탈당합니다.
- 왜
- 제국이 동서로 나뉜 뒤 고트족이 로마의 동맹군이자 위협으로 발칸과 이탈리아를 오갔습니다.
- 누구
- 스틸리코 대 알라리크, 그리고 406년 라다가이수스.
- 결과
- 402년 폴렌티아, 403년 베로나에서 알라리크를 물리치고 406년 피에솔레에서 라다가이수스를 꺾습니다. 408년 스틸리코가 처형되고 2년 뒤 알라리크가 로마를 약탈합니다.
CATALAUNIAN PLAINS
카탈라우눔 평원 전투
451년
아이티우스가 서고트족 등과 손잡고 갈리아에 들어온 아틸라의 훈족 연합을 막은 큰 싸움입니다. 지금의 프랑스 샹파뉴 지방 어딘가로 봅니다.
- 왜
- 아틸라가 서로마와 틀어지며 451년 갈리아로 쳐들어왔습니다.
- 누구
- 아이티우스와 서고트 왕 테오도리크 1세 등 대 아틸라와 동고트·게피다이 등 연합.
- 결과
- 아틸라가 물러납니다. 서고트 왕은 전사합니다. 이듬해 아틸라는 이탈리아로 방향을 돌립니다.
JUSTINIAN'S WARS
유스티니아누스의 재정복 전쟁
533–554년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벨리사리우스를 보내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과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을 되찾으려 한 전쟁입니다.
- 왜
- 유스티니아누스는 옛 서로마 땅을 다시 ‘로마’로 묶으려 했습니다.
- 누구
- 벨리사리우스(뒤에 나르세스) 대 반달 왕 겔리메르, 동고트 왕 비티게스와 토틸라.
- 결과
- 아프리카와 이탈리아를 되찾지만 이탈리아는 20년 전쟁으로 크게 황폐해집니다. 568년 랑고바르드족이 들어옵니다.
SPARTACUS
역사스파르타쿠스의 반란
기원전 73–71년. 카푸아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노예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로마군과 싸운 전쟁입니다. 주요 전쟁 여덟 개와는 따로, 영화 때문에 자주 묻는 사건이라 여기에 붙입니다.
- 플루타르코스와 아피아누스는 그를 트라키아 출신 검투사로 적습니다.
- 로마가 초기에 보낸 군대가 잇달아 집니다. 크라수스가 지휘를 맡은 뒤에야 전세가 기울어집니다.
- 1960년 영화는 이 전쟁을 알리는 데는 좋지만, 그의 정치 강령과 최후는 창작이 많습니다.
조금만 더펼치기접기
노예 반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시칠리아에서 이미 두 차례 큰 반란이 있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 전쟁이 가장 유명할 뿐입니다.
크라수스는 도망친 자기 부대에 열 명 중 하나를 죽이는 극형을 썼다고 전합니다. 로마군의 일상 훈련은 아닙니다.
- 왜
- 검투사 훈련소의 탈출이 이탈리아 노예와 가난한 사람들의 대규모 봉기로 번졌습니다.
- 누구
- 스파르타쿠스와 크리쿠스 등의 무리 대 크라수스가 지휘한 로마군. 폼페이우스는 막판에 잔여 세력을 처리하고 공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 결과
- 반란은 진압됩니다. 스파르타쿠스의 시신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포로 다수가 처형되었다고 아피아누스가 전합니다.
근거로 삼은 기록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크라수스
- 아피아누스 『내전기』 · 1권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
관련 영화
아래 작품은 로마를 무대로 한 극이며, 그리는 시대 순으로 놓았습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도움이 되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기원전 218–202년 · 제2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 로마 최악의 악몽」Hannibal – Rome's Worst Nightmare · 2006 · 영화
BBC가 만든 다큐드라마 TV 영화입니다.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과 칸나이, 파비우스와 스키피오가 함께 나옵니다.
재연 장면의 대사와 인물 감정은 극화입니다. 병력 숫자 등은 폴리비오스와 리비우스를 따르되 차이가 있습니다.
기원전 216–202년 · 제2차 포에니 전쟁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ne l'africano · 1937 · 영화
자마 전투를 크게 재연한 이탈리아 영화입니다. 고대 전투 영화사의 옛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정권의 선전 목적이 강하게 들어간 작품입니다. 역사 해설로 보기보다 시대의 기록으로 봅니다.
기원전 73–71년 · 공화정 말기
「스파르타쿠스」Spartacus · 1960 · 영화
검투사 출신 노예들이 로마 군단과 맞선 전쟁(기원전 73–71년)이 어떤 이야기인지 감을 잡아 줍니다.
스파르타쿠스가 트라키아 출신 검투사였다는 큰 줄기는 플루타르코스와 아피아누스에 나옵니다. 다만 그의 정치 강령, 개인적 인연, 최후의 말은 영화가 채운 부분입니다. 시신은 확인되지 않았고, 포로들이 길가에서 처형되었다는 기록과 영화의 결말을 똑같이 보면 안 됩니다.
기원전 52–30년 · 공화정 말기
「로마」Rome · 2005–2007 · 시리즈
카이사르부터 아우구스투스 직전까지, 공화정 말의 정치와 거리의 생활을 시리즈로 보여 줍니다. HBO와 BBC가 만들었습니다.
병사 보레누스와 풀로는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에 이름이 한 번 나오지만, 드라마 속 그들의 삶은 창작입니다. 원로원 정치의 결은 참고가 되어도, 누가 누구와 밀담했는지는 극본입니다. 왕정 시대나 포에니 전쟁은 다루지 않습니다.
기원전 48–30년 · 공화정 말기
「클레오파트라」Cleopatra · 1963 · 영화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이집트, 악티움으로 이어지는 큰 그림을 화려한 화면으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정치보다 연애가 앞에 놓입니다. 입성 장면의 규모나 대사는 고대 기록을 그대로 재연한 것이 아닙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도 영화가 고른 한 가지 버전일 뿐입니다. 역사 쪽 정리는 이 사이트의 클레오파트라 글을 보세요.
기원전 44–42년 · 공화정 말기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 · 1953 · 영화
셰익스피어 희곡을 옮긴 영화입니다. 카이사르 암살 뒤 안토니우스의 장례 연설과 필리피 전투까지 이어집니다.
대사는 셰익스피어의 창작입니다. 플루타르코스를 바탕으로 했지만 연설문은 사료가 아닙니다.
서기 9년 · 아우구스투스 시대(토이토부르크)
「바바리안」Barbarians · 2020–2022 · 시리즈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를 게르만 쪽에서 그린 넷플릭스 독일 시리즈입니다. 바루스와 아르미니우스가 나옵니다.
아르미니우스와 투스넬다, 가상의 인물 폴크빈의 관계는 크게 각색되었습니다. 로마군 대사가 라틴어인 점은 볼거리입니다.
서기 26–33년 무렵 · 티베리우스 시대
「벤허」Ben-Hur · 1959 · 영화
전차 경기, 갤리선, 로마가 속주를 대하는 태도를 크게 상상하게 해 줍니다. 루 월리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합니다.
유다 벤허는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바다 전투와 전차 경주는 극의 장치입니다. 티베리우스 시대 유대 지역과 로마 권력의 분위기를 보되, 사건 자체는 역사로 외우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2016년 리메이크보다 1959년 작품이 널리 알려진 제목입니다.
서기 434–453년 · 서로마 말기(아틸라)
「아틸라」Attila · 2001 · 시리즈
아틸라와 아이티우스의 맞대결을 그린 미국 TV 미니시리즈입니다. 카탈라우눔 평원 전투가 클라이맥스입니다.
두 사람의 개인적 인연과 연애 이야기는 대부분 창작입니다.